특별히 하는 일이 없으니 몸에 피로가 누적되지도 않아 잠에서 일찍 깬다. 배는 고픈데 아직 마루는 조용하다. 방문을 나와 물을 한 컵 마시고 그저 망하니 앉아있다. 시간이 지나 며느리와 아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 자식내외는 모두 직장에 나가고 나서 소일거리를 찾아볼까 옷매무새를 한 뒤 밖에 나간다. 시간은 많으니 아주 천천히 걷는다. 내 어깨를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제 갈길 가느라 바빠 툭툭 치면서 지나간다. 저 앞에서는 어떤 사람이 담배를 피면서 가는데 냄새 맡는 것이 고역이다. 지하철역에 도착하니 경마장이 있다. 스크린경마라고 요즘 역안에 하나 둘 씩 생겨 나가고 있다. 즐기려면 돈이 조금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만한 돈이 나에겐 없다. 그래도 지하철요금은 공짜다. 지하철을 타고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내리기 귀찮으면 그저 지하철에서 창밖을 구경해도 좋다. 4호선이 바깥구경을 하기에 좋다. 1호선은 너무나도 사람이 많지만 우리들이 가장 많이 가는 탑골공원이 있다. 그 곳에 가면 세상에 나 혼자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마음이 놓인다. 탑골공원에서는 어떤 아줌마가 박카스를 건네기도 하는데 스크린 경마 할 돈도 없는데 이런 건 아무나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 배가 고파 김밥집에 들러 원조김밥 한 줄을 사먹고는 또 재미난 것이 없나 이리저리 시장과 잡화점을 둘러본다. 청계천은 돈 없는 내가 서울구경 하기 참 좋은 곳이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날이 어두워져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시간을 제 때 맞춰 들어가야 며느리에게 구박받지 않고 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 밥을 먹으니 잠이 빠져든다. 특별하지 않은 오늘도 역시 그렇게 간다. 내일도 오늘과는 2% 다른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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