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런 말이 있다. 선거는 지배 계급에게 주기적으로 지배와 억압에 대한 정당성을 선사해 주는 제도일 뿐이다. 프루동의 말이다. 그러니까 지배 계급일 수 없는 일반 국민들은 단지 투표장에서만 나라의 주인일 뿐이다. 그들은 투표장을 나서는 순간 지배 계급에게 업신여김 당하고 짓밟히는 노예로 전락한다.
왜 그럴까? 이 말을 들어보라. 정치란 비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무도덕적인 것이다. 마키아밸리의 말이다. 그런 존재들에게 국민의 생존권과 재산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국가 권력을 송두리째 넘겨주고 말았으니 그 결과야 뻔한 것 아니겠는가. 그들이 돈과 결탁하는 '정경유착' 이 벌어지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들의 배신과 불의를 막기 위해서는 국민들은 또 다른 감시와 감독 조직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바로 시민단체다. 우리가 거의 무조건적으로 선망하는 선진국이란 나라들은 우리와 다른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리보다 GDP가 두세 배는 많은 부자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 제도가 훨씬 앞서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수많은 시민단체들의 철저한 감시와 감독 활동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인구를 가진 프랑스나 독일 같은 나라에는 5만여 개에 이르는 시민단체들이 활약하고 있다. 그 많은 시민단체들은 국민들의 생활과 직결되어 있는 모든 권력 기관들을 이중, 삼중으로 감시하고 감독한다. 그러니 '정경유착' '경권유착' '경법유착' '경언유착' '정언유착' '권언유착' 같은 것들이 벌어질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열 눈이 한 도둑 지키기 어렵더라고 만약 어떤 비리나 야합을 포착하면 그 즉시 법적 고발을 단행한다.
그런 튼튼한 구조 속에서 민주주의는 굳건해지고, 국민들은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 그것이야말로 생생히 살아 있는 직접민주주의의 실체인 것이다. 그럼 그 많은 시민단체들은 국가의 예산으로 운영되는가? 아니다. 순수하게 국민 개개인의 돈으로 운영된다. 국민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시민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해 일정액의 회비를 낸다. 그 회비가 시민단체들의 맥박을 뛰게 하는 피가 된다. 그들은 하나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관심에 따라 여러 개의 시민단체에 가입해 후원하기도 하고, 직접 자원봉사에 나서기도 하고, 어느 때는 시위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들의 그런 적극적이고 열성적인 모습은, 민주주의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누가 거저 주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힘을 합쳐 가꾸고 지켜야 한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시민단체가 몇 개나 있을까. 대충 2만여 개이지만, 생명력 있게 활동하는 단체는 2백여 개를 넘지 못한다. 왜 그럴까. 그 원인은 자명하다. 국민들의 참여 부족, 무관심 때문이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를 리 없다. 선진국들의 시민단체 역사가 100년이 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20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 쥐꼬리만 한 세월에 비하면 그 성과는 꽤나 컸다고도 할 수 있다. 경제의 고속 성장과 함께 모든 것이 고속 성장하는 사회답게.
시민단체라는 낯선 존재를 대중들의 인식 속에 확실히 심었고, 모든 권력 집단들이 시민단체들을 만만찮게 여기며 경계하게 되었고, 정치 경제 사회 환경 통일 등 수많은 분야에 걸쳐서 시위와 법적 고발과 법적 투쟁을 통해서 민주주의의 숲을 이루어 가는 데 기여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선망하는 선진국에 이르기 위해서는 결속력 강한 회원들로 이루어진 5만여 개의 시민단체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그 수수 많은 눈들로 정치권을 감시하고, 경제권을 감독하고, 법조계와 공직 사회와 언론계를 눈 부릅뜨고 지켜야만 비로소 전 사회는 맑고 깨끗해져 선진국의 문이 열리게 된다.
시민단체들의 활성화만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열리는 유일한 길이요, 희망이다.
- 조정래 작가 <허수아비 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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