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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Think

나는 대한민국의 노인이다.

by InvestorX 2013. 2. 18.


나는 대한민국의 노인이다.

특별히 하는 일이 없으니 몸에 피로가 누적되지도 않아 잠에서 일찍 깬다. 배는 고픈데 아직 마루는 조용하다. 방문을 나와 물을 한 컵 마시고 그저 망하니 앉아있다. 시간이 지나 며느리와 아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 자식내외는 모두 직장에 나가고 나서 소일거리를 찾아볼까 옷매무새를 한 뒤 밖에 나간다. 시간은 많으니 아주 천천히 걷는다. 내 어깨를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제 갈길 가느라 바빠 툭툭 치면서 지나간다. 저 앞에서는 어떤 사람이 담배를 피면서 가는데 냄새 맡는 것이 고역이다. 지하철역에 도착하니 경마장이 있다. 스크린경마라고 요즘 역안에 하나 둘 씩 생겨 나가고 있다. 즐기려면 돈이 조금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만한 돈이 나에겐 없다. 그래도 지하철요금은 공짜다. 지하철을 타고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내리기 귀찮으면 그저 지하철에서 창밖을 구경해도 좋다. 4호선이 바깥구경을 하기에 좋다. 1호선은 너무나도 사람이 많지만 우리들이 가장 많이 가는 탑골공원이 있다. 그 곳에 가면 세상에 나 혼자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마음이 놓인다. 탑골공원에서는 어떤 아줌마가 박카스를 건네기도 하는데 스크린 경마 할 돈도 없는데 이런 건 아무나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 배가 고파 김밥집에 들러 원조김밥 한 줄을 사먹고는 또 재미난 것이 없나 이리저리 시장과 잡화점을 둘러본다. 청계천은 돈 없는 내가 서울구경 하기 참 좋은 곳이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날이 어두워져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시간을 제 때 맞춰 들어가야 며느리에게 구박받지 않고 밥을 얻어먹을 수 있다. 밥을 먹으니 잠이 빠져든다. 특별하지 않은 오늘도 역시 그렇게 간다. 내일도 오늘과는 2% 다른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노인이다.